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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 (1948~1970)

전태일 열사
옛주소
도봉구 쌍문동 208
현주소
도봉구 해등로 195(쌍문동 56) 삼익세라믹아파트 112동 자리
평화시장 재단사였던 청년노동자로 1970년 노동자의 인권을 분신으로 항거하여 우리나라 노동운동은 물론 모든 사회계층의 권익향상과 현대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전태일 열사가 1966년부터 어머니와 함께 살던 쌍문동 무허가 판자집은 현재 삼익 아파트로 바뀌었다.
1948년 대구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끝없는 노동과 방황을 겪은 노동 자이다. 1964년 16세 때 평화시장에 ‘시다’ 즉, 미싱사 보조로 취직하여 열악한 작 업환경 속에서 꼬박 3년을 보내고 미싱사, 재단 보조 등을 거쳐 오랜 소원이던 ‘재 단사’가 되었다. 그는 이런 고단한 노동과 절박한 가난 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고『중고등통신강의록』을 사서 보기도 하였으며, 아버지와 열악한 노동환경·임금문제·기업주의 횡포 등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우연히 ‘근로기 <전태일> 준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축조 근로기준법 해설』이라는 책을 빚을 내서 구입하여 열심히 읽었다. 1968년 말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매주 한번씩 평화시장 부근 다방에서 10명 정도의 재단사들과 모임을 갖고 1969년 6월 ‘바보회’라고 이름을 지었으나, 바보회의 소문이 퍼지자마자 해고되어 평화시장에서 쫓겨나게 되고 막노동판을 떠돌다가 1970년 9월 다시 재단사로 취직할 수 있었다. 옛 바보회 사람들과 함께 ‘삼동친목회’를 만들어 노동청에 ‘평화시장 피복제품상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냈다. ‘11시간 작업, 일요일 휴무, 정기 건강진단, 다락방 철폐, 환풍기 설치’ 등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11월 13일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분신자살을 감행하였던 것이다. 그의 분신은 흔히 한국 노동운동을 10년 이상 앞당겼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청계천에서 근무하던 시절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 8시에 출근하여 밤 11시 마지막 버스에 맞춰 퇴근하던 그의 보금자리는 도봉구 쌍문동 208번지(현 56번지)였으며, 1985년 재개발되어 현재 쌍문동 삼익세라믹아파트 112동에 전태일 열사 동생 전태삼 가족이 살고 있다. 이 곳이 전태일 열사 옛집 자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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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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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 문학관 방학3동주민센터 방향 1.3km 도보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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