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훈제 선생 (1921~1999)
- 옛집터
- 도봉구 방학동 612-30
- 현주소
- 도봉구 방학동 612-28 공영주차장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민족해방협동단에 가입해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재야 민주화 운동과 통일운동에 앞장섰다. 교육자, 언론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사상계 편집장과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계훈제(1921년 12월 31일 ~ 1999년 3월 14일)는 평북 선천 출생으로, 경성제대 재학 중 학병 징집을 거부하고 항일활동에 참여하였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로 복학하여 문리대 학생회장을 지내면서 반탁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김구의 남북협상 참여를 지지하였다. 1960~70년대에는 교육자 겸 언론인으로서“사상계 ”편집장과“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 유신체제 등에 대한 반대투쟁을 치열하게 벌였으며,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 이후에도 반정부 투쟁과 통일운동에 매진하였다. 그로 인하여 수차례 투옥된 바 있으며, 말년에는 투옥 과정에서 받았던 고문 등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폐질환을 앓기도 했다. 1970~80년대 재야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로서 특유의 허름한 국민복에 흰 고무신 복장으로 유명했다. 1990년 부터 세상을 떠나던 1999년까지 방학동에서 거주했으며, 2002년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선정되었다.
계훈제(1921년 12월 31일 ~ 1999년 3월 14일)는 평북 선천 출생으로, 경성제대 재학 중 학병 징집을 거부하고 항일활동에 참여하였다. 광복 후에는 서울대학교로 복학하여 문리대 학생회장을 지내면서 반탁운동에 앞장서는 한편, 김구의 남북협상 참여를 지지하였다. 1960~70년대에는 교육자 겸 언론인으로서“사상계 ”편집장과“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5·16군사정변 이후 재야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한일회담과 베트남 파병, 유신체제 등에 대한 반대투쟁을 치열하게 벌였으며, 전두환 신군부의 등장 이후에도 반정부 투쟁과 통일운동에 매진하였다. 그로 인하여 수차례 투옥된 바 있으며, 말년에는 투옥 과정에서 받았던 고문 등의 후유증으로 인하여 폐질환을 앓기도 했다. 1970~80년대 재야 민주화운동의 정신적 지주로서 특유의 허름한 국민복에 흰 고무신 복장으로 유명했다. 1990년 부터 세상을 떠나던 1999년까지 방학동에서 거주했으며, 2002년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선정되었다.
관련사진
다음 코스 안내
코스명 | 이동수단 | 거리 | 소요시간 |
---|---|---|---|
김수영 시인 옛본가 | 우성어린이집 방향 | 1.4km | 도보 20분 |